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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finished portrait of Marie Antoinette, 1792 by Alexandre Kucharski, comissioned by the Queen as a gift for the Marquise de Tourzel, governess to the royal children.  The portrait miraculously survived the 10th August, 1792 revolutionary assault on the Tuileries, suffering only two pike blows.

Unfinished portrait of Marie Antoinette, 1792 by Alexandre Kucharski, comissioned by the Queen as a gift for the Marquise de Tourzel, governess to the royal children. The portrait miraculously survived the 10th August, 1792 revolutionary assault on the Tuileries, suffering only two pike blows.

vivelareine: Um retrato de Maria Antonieta e seus filhos, após uma pintura por Elisabeth fonte Vigee-Lebrun: MutualArt.com

vivelareine: Um retrato de Maria Antonieta e seus filhos, após uma pintura por Elisabeth fonte Vigee-Lebrun: MutualArt.com

georgiana, Duchess of Devonshire Sir Joshua Reynolds.  Another larger-than-life Spencer woman, Lady Georgiana Spencer was a force of nature. She was married to the Fifth Duke of Devonshire when aged seventeen.

georgiana, Duchess of Devonshire Sir Joshua Reynolds. Another larger-than-life Spencer woman, Lady Georgiana Spencer was a force of nature. She was married to the Fifth Duke of Devonshire when aged seventeen.

TITLE ] 이 그림은 교과서에서 발췌한 그림으로 작자를 알 수 없으나 그림 속 여인이 입고 있는 것은 인류의 사상이   가장 비약적으로 진보했던 시기를 함께했던 대표적인 의복인 ‘로브 아 랑글레즈’이다. 개인적으로 프랑스 혁명은 인류역사의  제 2막을 연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로브 아 랑글레즈는 프랑스 혁명기 이전부터 입혀져 온 의복으로 사치로 대변되는 프랑스  귀족들의 의복인 ‘로브 아 라 프랑세즈’와 대척점에 있다. 영국에서 주로 착용되었으며 프랑스에서는 주로 중산층의 여성들이  입던 이 의복이 혁명기 이후 가장 대중적으로 착용되며 비로소, 귀족은 자신들을 상징했던 ‘사치’를 벗고 ‘검소’를 입기 시작했다.  동시에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던 가장 큰 상징을 벗어던지고 나서야 비로소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시민의 권위가 다시 서기  시작한 것이다. 역사 속 그 어떤 의복보다, 그림 속 그 어떤 여인 보다 이 그림 속 여인의 미소가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TITLE ] 이 그림은 교과서에서 발췌한 그림으로 작자를 알 수 없으나 그림 속 여인이 입고 있는 것은 인류의 사상이 가장 비약적으로 진보했던 시기를 함께했던 대표적인 의복인 ‘로브 아 랑글레즈’이다. 개인적으로 프랑스 혁명은 인류역사의 제 2막을 연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로브 아 랑글레즈는 프랑스 혁명기 이전부터 입혀져 온 의복으로 사치로 대변되는 프랑스 귀족들의 의복인 ‘로브 아 라 프랑세즈’와 대척점에 있다. 영국에서 주로 착용되었으며 프랑스에서는 주로 중산층의 여성들이 입던 이 의복이 혁명기 이후 가장 대중적으로 착용되며 비로소, 귀족은 자신들을 상징했던 ‘사치’를 벗고 ‘검소’를 입기 시작했다. 동시에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던 가장 큰 상징을 벗어던지고 나서야 비로소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시민의 권위가 다시 서기 시작한 것이다. 역사 속 그 어떤 의복보다, 그림 속 그 어떤 여인 보다 이 그림 속 여인의 미소가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